선수가 잘해야 감독이 빛을 본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으로만 26년동안 통산 2194승을 거두고(역대 5위) 월드시리즈 우승을 세번이나 시켜낸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스파키 앤더슨이 한 말이다.

그는 저 말을 하면서 본인이 명장 소리를 듣는 야구 감독임에도 불구하고 야구 감독의 역활에는 한계가 존재한다는것을 인정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정도로 명감독이라 불리는 앤더슨 자신도 감독 생활을 하는동안 선수덕을 많이 보았다 라고 해석할수도 있는 저말. 과연 야구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메이저리그에서는 감독이 게임에 차지하는 비중을 별로 크게 보지 않는다. 실제로 미국의 3대 스포츠(NFL, MLB, NBA)중 가장 감독의 연봉이 작은 스포츠가 MLB이기도 하다. 감독이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비중이 가장 작기 때문이다. 만일 야구에서 감독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다면 당연히 구단주들은 명감독을 모시려고 안달을 쓰게 될것이고, 그렇게 되면 감독의 연봉도 치솟게 되는건 안봐도 뻔한일이다.

그러나 KBO에서는 오히려 왠만한 스타 감독은 왠만한 선수들보다 많은 연봉을 받는다. 감독의 평균 연봉은 선수 평균 연봉의 약 2.9배나 되고, 야구에 관심이 없어서 왠만한 선수이름은 못들어본 사람도 김인식이나 김재박이 누군지는 아는경우도 많다. 근데 이게 과연 현명한 행동일까?

실제로 감독이 야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면, 팀이 따낼수 있는 승수에 감독의 영향이 크게 미쳐야한다. 그러나 과연 야구에서 감독이 승수에 주는 영향이 선수가 승수에 주는 영향보다 클까? 아무리 야구를 감독위주로 보는사람이라도 이 대답은 당연히 'No'라고 할거다. 실제로 대부분의 감독은 팀의 승패에 아무런 영향을 주고있지 않다. 팀 득점, 팀 실점을 바탕으로 충분히 야구에서는 그 팀의 예상 승수와 패배수를 구해낼수 있다. 그리고 그 팀 득점, 실점마저도 선수들의 성적을 바탕으로 충분히 계산이 가능한게 야구다. 선수의 스탯을 놓고서 이 선수는 팀 득점에 얼마를 기여했고, 이 투수는 얼마나 팀 승리에 기여를 했는가를 구해낼수 있다. 그렇게 구한 결과 실제로 감독이 누구던간에, 팀 성적은 거의 오차가 없게 나왔다. 물론 몇경기의 오차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극히 미미하기에 별로 신경쓸만한 수치도 아니다(162게임에서 기껏해야 5경기 내외) 그 오차가 감독의 능력이라고? 그 전해나 그 전전해, 다음해에 감독이 바뀌지 않은경우에도 그런 오차가 똑같이 나온다면 당연히 그만큼의 +,-가 감독의 능력이겠지만 실제로 그런경우는 없다. 명장소리를 듣는 감독중 하나인 김인식 감독조차도 한시즌에 야구에서 감독때문에 결정되는 게임은 1년에 10경기 내외라고 한다. 아무리 뛰어난 명장이라 하더라도 모든 작전에 성공할수는 없으니 뛰어난 감독으로 1년에 5승을 더 거둘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고 1등할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할까? 그렇다고 꼴찌팀이 가을에 야구할수 있을까? 설령 그 5승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이 결정되더라도, 감독에 몇억씩 들일돈으로 좋은 선수를 데려오면 10승을 더 거둘수 있을거다.

결국 감독의 역량과는 관계없이 그냥 선수들의 능력에 따라, 팀 전력에 따라 야구는 이기고/진다는 거다.

그럼 그 팀 득점/실점에 영향을 주는 선수들의 성적이 감독에 따라 달라지는건 아니냐? 라고 묻는 사람도 있을거다. 그러나 이런 한심한 질문에는 굳이 대답할 필요조차도 못느낀다. 직접 인터넷을 뒤져 기록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원래 2할대 타자가 감독이 바뀐다고 갑자기 3할을 치는게 가능할까? 원래 3할타자가 감독이 바뀐다고 2할대 타자가 될까? 혹은 원래 2점대 방어율 투수가 감독이 바뀐다고 갑자기 5점대 방어율 투수로 망가지는게 가능할까? 야구를 봐온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니라고 대답할거다. 3할대를 치던 타자가 2할대를 치는 이유는 나이가 들어 배트스피드가 감소했기에 라던가 부상을 당했다던가 라고 설명하는게 더 설득력이 있지 허접한 감독이 부임해서 선수가 타격실력을 잃어버렸다 라고 하는건 아무런 설득력이 없는 소리다.

물론 감독이 전혀 쓸데없다는건 아니다. 그럼 아무나 가서 감독해도 되겠네? 라는건 말도안되는 소리다. 일반인과 야구감독은 비교할수가 없다. 평생을 야구와 씨름해오고 연구한 감독들과 그냥 TV나 경기장에서 지켜보면서 이기면 완소선수타령하고 팀이 못나가면 감독을 까는 팬들은 서로 애당초 비교대상이 아니다. 백년이 넘게 매일같이 플레이된 야구에서 이미 나올만한 작전들은 다 나왔다. 그리고 감독들은 그 작전들에 대해서 다 알고있다. 세이버매트리션들은 비록 감독의 작전은 감독이 게임에서 지고났을때 난 내할일을 했어 라고 변명할수 있는 거리밖에 안된다고 비야낭거리긴 하지만, 가끔가다 성공적인 작전으로 승리하는날도 있는법이다. 그러나 결국에 작전을 수행하는건 선수들의 몫이고, 너무나 뻔한 말이지만 좋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 작전성공률도 높다. 그리고 성공하는날이 있는만큼, 실패하는날도 있고 얼마나 더 성공하고/실패하느냐는 선수들의 능력에 달린일이다.

감독이 야구에서 할수있는 것이라곤 고작해봐야 엔트리를 정하고 어느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하느냐 마느냐와 그 엔트리에 든 각자 성격이 다른 선수들을 잘 이끌어 나가는게 전부이다. 물론 어느 선수를 주전으로 기용하느냐는 당연히 중요한일이다. 그러나 어느 감독이 감독을 하더라도 엔트리에 넣을 선수와 라인업/로테이션은 결국엔 비슷할것이다. (실제로 감독이 바뀐다고 라인업이 통째로 바뀌거나 투수 로테이션이 통째로 바뀌는경우는 없다.) 결국 선수들을 잘 다독여 클럽하우스 분위기만 항상 좋게 유지해도(결국 이것도 성적이 좋아야 유지되는법. 성적이 좋으려면? 좋은 선수들이 많으면 성적이 좋아진다.) 내가볼땐 충분히 명감독이다.

만화에 나오는것마냥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팀에서 천재적인 감독이 부임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경우는 여지껏 야구역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절대 나오지 않을거다.

KBO 각구단 프런트에게 말해주고 싶다. 스타 감독이네 뭐네 하면서 감독한테 몇억씩 줄돈이 있으면 차라리 그돈으로 선수를 데려오라고. 그렇게 하면 지금 팬들이 경질하라고 난리치는 감독이 명장이 되는건 결국 시간 문제라고 말이다.

그리고 팀이 하위권에 쳐지면 무조건 감독탓을 하는 팬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선수들이 허접한걸 뭘 어쩌라고? 라고 말이다.


물론 나도 감독의 능력이 제각각 다르다는것은 알고있고 허접한 감독과 명장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차이는 우리가 생각했던것보다 극히 작을뿐이고 아무리 명장이라도 선수들이 못하는경우는 어쩔수 없으며 아무리 허접한 감독이라도 뛰어난 선수들을 가지고 있는 팀의 감독이 될경우엔 좋은 성적을 낼거라 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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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kin | 2007/06/18 18:57 | ETC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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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에라이 at 2007/06/18 22:19
NBA랑은 확실히 비교되는군요. NBA라고 감독이 대신 뛰어주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NBA는 감독 영향이 너무너무 막대합니다. 비스무리한 멤버로도 감독이랑 코칭 스태프 바뀌자마자 팀이 돌변하는 사례들이 하도 많으니...허허
Commented by Anakin at 2007/06/18 22:35
그럴수밖에 없는게 농구는 5:5로 실시간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감독에 따라서 전술 변화 즉 포메이션이라던가 그런 변화가 심하겠지만 야구는 기본적으로 투수/타자와의 1:1대결이고 그 대결이 계속 연결되는게 아니라 끊어졌다 말았다를 반복하고 전술 변화를 줄만한게 별로 없져..
Commented by Atletico at 2007/06/18 23:53
뭐 하지만 작년까지 프랑코나 감독이 욕 쳐먹어 들어온 것에는 자기 원인도 있다는 거 부정은 못할 듯.
보스턴 선수들이 캐병진에 허접도 아니고.......

(단장 문제인건가?)
Commented by Anakin at 2007/06/19 00:04
사실 나도 프랑코나 깔땐 까는사람이지만 야구 감독은 전승해서 우승시키지 못하는 이상엔 무조건 까일수밖에 없다고 봄.. 전승해서 우승시켜도 까일려면 충분히 까일만한 직업이고.. 프랑코나가 작전 구사능력에선 좀 삽질 많이 하긴 하는데 그래도 그많은 다국적 스타군단을 모아놓고 덕아웃 분위기 항상 좋게 만드는거 보면 사람을 관리하는 능력이 있어보여서 맘에 들고..

특히 올해는 작전 삽질도 훨씬 덜한데 올해부터 덕아웃에서 씹는담배 금지시켜서 그런건가.. 근데 사실 최근 몇년간 보스턴 선수들중 작전수행능력이 좋았던 선수는 거의 없었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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